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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성의 법칙: 왜 어떤 때는 유전이, 또 다른 때는 환경이 지배하는가

 

[서문]

내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온 지적 주제 중 하나는 ‘선천(Nature) vs. 후천(Nurture)’ 논쟁이다. 이 주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에세이 수업에서 선생님이 ‘미네소타 쌍둥이 연구(Minnesota Study of Twins Reared Apart)’를 소개해주셨을 때였다.
이 연구는 20여 년간 진행됐는데, 태어나자마자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된 쌍둥이들이 놀랍도록 비슷한 삶의 선택, 습관, 심지어 반려동물 이름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닮아있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선생님은 심지어 “이 결과는 심리학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말하며, 유전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궁극적 요인일 수 있다고 시사했다. 그 순간 나는 지적인 충격을 받았다. 내 ‘자유의지’의 본질을 다시 질문하게 되었고, 유전과 환경이 어떻게 맞물려 우리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오랜 탐구가 시작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천 vs. 후천’이라는 말은 꽤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선천’은 비교적 명확하게, 유전이라는 결정론적 요소로 정의할 수 있지만, ‘후천’은 개인의 노력과 가정환경에서부터 교육, 문화, 사회 구조, 국가 정책, 심지어 지정학적 환경까지 폭넓은 범위를 포함한다. 책, 연구,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른 요인을 더 중요하게 보며, 나름의 논리적 일관성을 갖춘다. 하지만 결론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다 옳을 수 있을까?
내가 내린 임시 결론은 이렇다.
“어떤 시·공간에서든, 그 시스템 내 변동성(variance)을 가장 크게 만드는 요인이 그 순간의 지배적 힘이 된다.”

나는 왜 어떤 경우에는 선천이, 또 다른 경우에는 후천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그 이유가 분석을 시작하는 ‘관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내가 정리한 관점은 두 축을 기준으로 한 네 개의 렌즈다. 두 축은 ‘공간의 범위’(단일 사회 vs. 다중 사회)와 ‘시간’(단일 시점 vs. 시간에 따른 변화)이다. 각 렌즈는 특정 상황에서 어떤 요인이 가장 큰 변동성을 가지는지를 드러내며, 그 맥락에서 그 요인이 증폭된다.


[렌즈 1: 단일 사회, 단일 시점]

이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유전적 특성이나 태어난 월과 같은 초기 조건의 영향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네소타 쌍둥이 연구가 강력했던 이유는 ‘환경’ 변수가 비교적 통제된 상태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모든 연구 대상이 같은 나라(미국) 출신이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유사한 사회경제적 환경의 가정에 입양되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는 캐나다 하키 선수의 생일 사례를 통해, 임의적인 ‘후천적’ 요소가 선천과 맞물리는 방식을 보여준다. 캐나다 프로 하키 선수들은 1~3월 출생자가 유난히 많다. 이유는 리그 연령 기준일이 1월 1일이라, 연초 출생자가 같은 학년 내에서 신체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개인 의지와 무관한 제도적 규칙이 특정 분야의 성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례다.


[렌즈 2: 단일 사회, 시간의 흐름]

하나의 사회를 장기간에 걸쳐 바라보면, ‘후천’ 범주 내에서도 정책과 경제처럼 변화 폭이 큰 요소가 지배적인 요인으로 떠오른다. ‘변동성’ 관점에서 보면, 수십 년에 걸쳐 정책과 경제는 뿌리 깊은 문화나 지리보다 훨씬 변화 여지가 크다.

장하준 교수의 『맛있는 경제학(Edible Economics)』은 이런 시각을 제공한다. 그는 『문명의 충돌』의 헌팅턴처럼 동아시아의 20세기 후반 성공을 ‘유교적 근면성’ 탓으로 돌리는 문화결정론을 반박한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서구 학자들은 같은 유교 문화를 ‘게으름’과 ‘획일성’의 원인이라 비판했다. 진짜 원인은 정책이었다. 정부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가계 대출을 억제했고, 그 결과 높은 저축률이 나타났다. 토지개혁과 교육 기회 확대가 결합되면서 ‘교육열’이라는 문화가 형성됐다. 즉, 고저축과 교육열 같은 ‘정체성’으로 여겨지는 행동조차, 개인 의지나 문화보다 정책의 산물일 수 있다.


[렌즈 3: 다중 사회, 단일 시점]

여기서는 문화나 사회 구조처럼 장기적이고 완만하게 변화하는 요인이 부각된다. 『이웃집 소시오패스(The Sociopath Next Door)』에 따르면, 서구의 소시오패스 비율은 집단주의적 동아시아보다 최대 40배 높다. 개인주의적 문화가 소시오패스 성향의 발현에 더 비옥한 토양이 된다는 가설이다.

또한, 나는 대학 시절 암 수업에서 2세대 일본계 미국인의 암 발병 패턴이 일본 내 친척보다 백인 미국인과 더 유사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식습관 같은 환경 요인이 유전적 소인을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해외에서 성인이 되어 생활하며 나도 이런 차이를 체감했다. 런던에서는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한국보다 훨씬 적었다. 영국은 세대 간 부의 축적과 산업별 임금 격차가 크고, 한국은 산업화 시기가 짧고 임금 구조가 비교적 평평하여 사회 이동 사다리에 대한 개방감이 크다. 반대로 싱가포르에서는 절약 정신이 두드러졌다. 다인종 사회에서 과도한 부의 과시는 마찰을 낳을 수 있고, 공공주택(HDB)과 연금 제도가 저축을 장려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사회 구조와 문화가 개인 행동을 얼마나 깊게 형성하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렌즈 4: 다중 사회, 시간의 흐름]

가장 넓은 시각으로, 여러 사회를 긴 시간에 걸쳐 비교하면, 지정학 같은 대규모 구조적 요인이 주도권을 잡는다. 피터 자이한 같은 지정학 전략가들은 현재 세대가 당연하게 여기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결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1944년 이후 ‘온화한 패권국’ 미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전 세계 안보와 무역을 보장하며 만든 특수한 체제다.

예컨대 삼성과 TSMC의 성장은 단순한 기업가 정신의 기적이 아니라 지정학적 ‘창(window of opportunity)’의 산물이었다. 1980년대 미·일 반도체 마찰 속에서 미국은 대안을 필요로 했고, 한국과 대만 정부는 강력한 정책 지원으로 이 기회를 붙잡았다.

이런 지정학적 힘을 인식하면 역사 해석이 달라진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위인들의 결단과 행동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선천’ 중심 관점이다. 하지만 구조적(‘후천’) 힘을 인식하면 역사의 필연성을 재고하게 된다. 히틀러가 미술학교에 합격했다면 2차 세계대전이 없었을까? 스탈린이 한국전에서 중국·북한 지원 약속을 어긴 것은 우연이었을까? 시진핑의 확장 전략은 덩샤오핑 노선의 일탈인가, 아니면 중국의 구조적 위치가 낳은 필연인가? 이런 질문들은 개인의 영향력 한계를 직시하게 만든다.


[결론]

네 개의 렌즈를 통해 살펴본 여정은 결국 내 가설로 돌아온다. 어떤 시점이든 가장 큰 변동성을 만들어내는 요인이 지배력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렌즈로 바라보느냐가 결론을 크게 바꾼다.

이 인식은 우리에게 겸손을 준다. 우리의 성취가 전적으로 개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태어난 시대와 장소라는 거대한 순풍 덕분일 수 있음을 인정하게 만든다. 많은 ‘후천’ 요인은 유전만큼이나 결정론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것은 운명론이 아니다. 오히려 제약을 명확히 인식할 때, 변화의 지렛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고,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나는 이것을 3차원 체스에 비유한다. 규칙과 말의 배치는 정해져 있지만, 말이 적더라도(심지어 폰만 있더라도) 올바른 위치에 두면 왕을 체크메이트할 수 있다.

핵심은 변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힘의 방향을 읽는 것이다. 어떤 축의 변동성을 줄이고, 다른 축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이는 국가 차원뿐 아니라 조직 운영에서도 적용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어의 높임말이 선수 간 신속한 소통을 방해한다고 판단해 모든 선수가 반말을 쓰도록 했다. ‘위계’ 축의 변동성을 줄여 ‘성과’ 축의 변동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비슷하게, 훌륭한 리더들은 조직 내 불필요한 관료주의나 권위 의존을 줄이고,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는 쪽으로 시스템을 설계한다. 예컨대, 어떤 기업들은 회의 시 직급 호칭 대신 이름만 부르게 하거나, 아이디어 제안을 익명으로 받는 방식을 택한다. 이렇게 하면 위계나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성과에 직접 연결되는 요인들이 더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