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ieving that you can, makes a huge difference.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스스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생각보다 무엇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낸다. 대부분 사람들은 스스로 한계를 긋는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한계를 자신에게만 긋는것이 아니라 남들에게도 부끄러움 없이 또는 가르치듯이 한계를 긋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생때 생각해봐도 많은 학생들은 예를 들어 90점 이상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나아가 여러가지로 합리화한다. 이 수학문제는 수학선생님도 어려웠대, 이 영어 시험은 원어민도 이 점수는 못 받는대 하면서 이런 비슷한 말을 많이한다. 이에 대해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있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일반적으로... 이런식으로 스스로 한계를 긋는 습관이 지나치게 만연해 있다고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길게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려워 보이거나,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었던 경험이 많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화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왜냐면 내가 과거에 아주 어렵다고 생각한 것들을 익히고 성취하는 것, 그 과정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는 용기가 생각보다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스스로 한계를 지으며 또 그 한계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한 척하며 더 그 한계를 공고히하며, 오히려 그 한계 넘어의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예를 들면 연봉 10억은 평생 열심히해도 벌기 힘들다, 연봉 10억이면 뉴욕에서 대기업 다녀도 못번대, 그렇게 벌고 열심히 일하면서 난 워라밸 포기 못해 그런 삶은 고통스러워 이런식이다. 공부 돈 말고 다른 것에 대입시켜도 마찬가지인거 같다. 그리고 남들이 그런 목표를 가지거나 이룬 사람들을 보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이 가장 노예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실상을 부정하며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10억을 벌 수 있지만, 가족이 더 중요해서, 여행이 더 중요해서 등의 이유로 덜 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긍정적인 지향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단기적 고통을 덜기 위해 왜곡된 현실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계를 긋는 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습관이 좋지 못한 이유는 이후에 내가 더 큰 이상을 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이상을 이루는데 난이도를 스스로 점점 더 높게 만드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인생의 여러 목표들은 현실적으로 특정 시기, 특정 환경에 놓여지지 않는다면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목표도 스스로 이룰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한계짓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은 것은 맞지만, 내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내 나이가 몇인지 내 주변 친구들이 어떤지 등등에 따라 같은 목표, 같은 실력이라도 난이도는 급격히 차이가 날 수 있다.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이가 들면서 원래는 DNA, 가족 주변 환경이 선천적인 부분에 속하다가 점차 이제 커가면서 여러부분이 마치 선천적인 부분인 마냥 내 일부가 되버린다. 그래서 내 목표와 생각범위는 그 안에 고착화된다. 온라인 세상의 보편화로 인해 간접경험이 매우 용이해진 오늘날이라도 실제 주변 환경은 생각보다 개인에게 물리적인 부분만 아니라 심리적 내적 외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의 목표는 필연적으로 로그함수의 모양을 그리게 되고 어떤 사람들의 목표는 필연적으로 지수함수의 모양을 그리게 된다. x축이 노력이라면 y축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같은 노력을 투입해도 성과의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이다. 조금 세속적이고 하찮은 예를 들자면 고등학생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전공의 학생이 비슷한 수준의 대학을 졸업했을 때 가능한 진로와 보상 수준은 10배까지 차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회 초년생 기준으로 봤을 때도 그 둘의 투입한 노력은 비슷할 수 있다. 그 후 몇 년 뒤 한국에 있는 A가 미국의 B를 따라잡기 위해선 B가 그 동안 한 노력보다는 더 투입해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된다. 10년 뒤 인생 총 투입 노력은 정말 비슷할 수 있다. 사실 한편으론 이런 점때문에 B같은 사람도 스스로 겸손해 질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말이 좀 정리가 안됐지만... 결론은 한계짓은 습관은 정말 습관이 되어 스스로를 계속 갉아먹게 된다.
한계를 잘 짓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의식과잉의 잘난 사람들이 많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이미 성취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에 대해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는 경쟁률이 어느정도이고 특정 학교를 나와야만 가능하고 경력은 어느정도 되야하며 등등을 강조하는 경우가 이런 것에 해당되는 것 같다. 스스로 이미 가진 것에 대해 지나치게 대단하고 주변에 벽을 쌓고 공고히하는 데 여력을 쓰기 때문에 한 단계 나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대기업에 다니며 또는 전문직 직장을 다니며 이리저리 여러 직업을 비교하는 데 지나친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 창업이라는 옵션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태도는 가능하다 믿는 것이다. 현재 환경에보다 더 높은 목표를 가능하다고 믿자. 그게 가능하다고 믿고 그게 나의 목표가 된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믿는다면 방법을 생각하게된다. 환경을 바꿔서 그 목표의 난이도를 낮출 수있다. 어려 방식으로 그 목표의 현실적 성취 가능성을 높일 방법이 점점 더 보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더 높은 목표를 꿈꾸는 게 고통스럽고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고생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불쌍한 사람만드는 narrative를 혼자 만들지 말자. 사실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엄청나게 힘들다. 새로운 목표 더 높은 목표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만들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난이도 자체가 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난이도라는 것이 노력과 비례하는 것도 아닌거 같다. 가능하다고 믿고 남들의 시선을 이겨내는 용기가 더 필요한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는데 필요한 노력과 고통이랑 불가능해보이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고통의 양은 비슷할 수도 있다. 그게 내 생각이다. 남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도 필요한것 같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가능한 것들이 많다. 여러 주변 환경을 그대로 given으로 받아 들이고 불가능한 것이 많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사실 불가능해보이는 것들을 성취한 사람들의 과실의 나눔덕에 더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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